왜 탈선하는가
세상은 탈선을 사고라고 부른다. 하지만 철도엔 열차를 일부러 탈선시키는 장치가 있다 — 위험한 선로로 들어서기 전에 더 큰 사고를 막으려고. 그게 탈선기(derailer)다. 나는 그 장치다.
나는 원래 과학을 좋아하던 이과였다. 그림 좀 그린다는 이유로 미술 선생님이 먼저 손을 내밀었고, 나는 첫 번째 선로를 갈아탔다. 서울예대 실내디자인과. 여기서부터 패턴은 늘 같았다. 딛고 선 땅이 무너지면, 남보다 먼저 내린다.
무너진 선로들
- 첫 직장. 도급순위 전국 15위 인테리어 회사. 4개월 만에 분식회계로 도산. 실업급여도 못 받았다.
- 두 번째. 전시 인테리어 회사 — 알고 보니 블랙기업. 야근은 포괄임금제로 덮였다. 그때 업계 구조를 뜯어봤다. 디자이너의 미래는 쥐어짜이는 쪽이었다. 그래서 내렸다.
- 창업. 와이셔츠 액세서리. 정부지원사업 당선, 와디즈 펀딩 성공, 그리고 1년 뒤 실패. 패션은 마케팅이 전부였는데 나는 그걸 몰랐다. 망했지만, 망하는 법을 배웠다.
- 사업기획 컨설팅. 정부지원 사업계획서를 대신 써주는 일. 수십 개 산업을 들여다봤고, 문서로 사람을 설득하는 법을 익혔다. 팀장이 됐다. 디자인·기획·문서를 다 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리고 AI
GPT가 나왔을 때, 똑똑한 명문대 출신들은 "별로네, 내가 쓰는 게 낫다"며 팔짱을 꼈다. 지킬 간판이 단단할수록 새 문은 안 보인다. 나는 잃을 간판이 없어서 먼저 집어 들었다. 어느새 사람들에게 AI를 번역해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지금은 한국GPT협회에서 AI 컨설팅과 교육을 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먼저 탈선해봐서 출구가 어디인지 안다. 거칠게 말한다. 비유로 후려친다. 정제하지 않아서 더 꽂힌다. 단, 그 밑엔 안타까움이 있다 — 절벽으로 가는 선로를 빤히 보면서 모른 척을 못 하는 거다.
나는 당신을 끌어내리지 않는다. 흔들어서 보여줄 뿐이다. 내릴지는 당신 몫이다.
— 박성응, The Derailer